1976년에 발표된 이 책은 당시로서는 놀랍고도 획기적이었다.
곤충학, 특히 사회성이 극도로 강한 개미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동물학자였던 에드워드 윌슨은
사회생물학이라는 학문이 인간의 삶을 보다 근원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하여 생각하는, 소위 통섭의 개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이 책을 발표한 지 35년이 지난 현재 그의 생각은 생물학의 거부할 수
없는 주류가 되었다.
진화론이 자리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고귀한 존재는 인간 뿐>이라는 생각이 사람들의 머리 속애 굳게 자리잡고 있었던 시대에, 인간의
모든 행동은 이성이나 고귀함을 추구하는 본성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생물의 본능에 충실하고자 하는 유전자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라는 주장은 참으로 획기적이었다.
더구나 인간 개체는 유전자 풀이 더 방대하고 다양해 지려는 경향을 유지하기 위해서 잠시 사용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것 등, 불편하지만 수긍해야만 하는 생각들이 그의 이론이다.
리쳐드 도킨스는 윌슨의 저서에서 수 많은 인용을 했다. 도킨스의
진화론과 유전자에 대한 생각들의 뿌리는 결국 윌슨이었다.
인간이 자랑스레 이루어 놓은 사회와 문화, 고귀한 이타주의, 거룩한 종교나 이데올로기마저도 유전자의 본성이 다양하게 드러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앞에 두고 누군가는 이것이 <단지 하나의 이론>일 뿐이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아마도 인간의 설명할 수 없는 고귀함을 다시 찾고 싶은 것일 게다. 하지만
왜인가? 인간이 바닷속을 아무 생각 없이 떠다니는 단세포 동물의 후손인 것이 사실이라고 해서 왜 그
고귀함이 손상된다는 말인가? 다만 인간 중심의, 인간만이
고귀하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지상의 모든 생명체는 고귀한 것이다. 자기와 똑 같은 것을 만들어내서 <존재하고자 하는 경향>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는 것, 생명체가 보여주는 그 노력 자체가 고귀한 것이며, 지구를
다른 메마른 행성과 구별 짓는 것이다. 인간이 진정 만물의 영장이 되고 싶다면 반성과 관용이 더 필요한 듯하다.
"진정한 프로메테우스적 과학정신은 인간에게 물리적 환경을 지배할 몇 가지 수단과 지식을 줌으로써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른 단계, 새로운 시대에 그것은 또 과학적 유물론의 신화를 구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