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찾고, 사랑하고, 헤어진다는 통속적인 이야기를 3시간 동안 끌고 나가서는 급기야 깐느 황금종려상까지 받았으니 케시시 감독의 능력은 대단하다. 첫째는 동성애 이야기라는 것이다. 아직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은 나이의 아델의 감정은 성장과정의 일탈일 수도 있고, 성향일 수도 있겠다. 영화가
강조하는 점은, 동성애 역시 한치의 틀림도 없는 사랑이며, 거부할
수 없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동성애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감독의 장치는 많이 발견된다.
몇 가지 특별함 때문에 이 신파 멜로드라마는 강력한 힘을 가진다.
둘째 요소는 주인공의 연기이다. 특히 아델의 연기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치밀하다. 청소년기의 내적 갈등, 알 수 없는 불안, 갑자기 치솟아 오르는 감정, 그리고 헤어짐과 만남의
갈등을 천연덕스럽게 표현한다. 클로즈업에서도 결코 위축되지 않는 표정은 연기인지 아닌 지
분간하기조차 힘들다.
셋째는 절제된 화법이다. 감정 표현은 시각에 의존하고,
대화는 간단하다. 미세한 표정을 볼 수 있지만 설명은 없다. 덕분에 영화는
친절하지 않다. 몰입해서 관찰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를 놓치게 된다. 하지만 이 불친절함 때문에 영화는 시적인 여운을
가진다.
치밀하고 아름다운 이 멜로 드라마는, 사랑은 결국 자신의 내적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것임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며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공허함은 결코 채워지지 않으며, 오히려
또 다른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 까지도 동성애와 이성애는 철저히 동일해 보인다. 어떤 종류의 사랑에서든, 우리는 사랑의 본질이나 상대방의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 채 자신의 감정을 바탕으로 사랑을 정의한다. 두 사람의 이질적인 사랑들은 서로를 붙잡지 못하고 미끄러지기만 하면서 갈등을 만든다. <봄날은 간다>에서 상우는 묻는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사랑은 변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원래부터 너의 사랑은 나의 사랑과 다르다는 것이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소름 끼칠 정도로 인상 깊은 성관계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그
짙은 에로티시즘 위에 어둡게 드리워져 있는 불안과 우울을 본다. 성적 결합은 결코 같을 수 없는 두
사람의 사랑을 동일하게 만들어보려 몸부림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 말도 안 되는 감정의 폭풍은 항상 불안과 짝을 이루어 나타난다. 어떤 사랑도 완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완전하지 않기에, 사랑은 달기도 쓰기도 하다. 그래서, 삶은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