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게일 (The Life of David Gale, 2003)
어린 시절, <핑크 플로이드의 “벽”>으로 나를 사로잡았던 알란 파커의 최근작이다.
기존 체제와 가치관에 도전하는 정치적인 작품들로 깐느(1984, 버디) 그랑프리까지 수상했던 전력답게 그는 언제나 진보적이고 사회성 짙은 영화를 만든다.
잘 나가던 텍사스 오스틴대학 법대 교수 데이비드 게일(케빈 스페이시
분)은 만취상태에서 퇴학당한 여학생의 계략에 빠져 성관계를 가진 후 강간죄로 고소 당한다.
결국 무죄로 밝혀졌지만 그럼에도 순식간에 교직에서 쫓겨나고, 아내와는 이혼 당하며, 아이까지 빼았기고, 그 때까지 열성적으로 일해 온 사형제도 폐지
단체 <데스워치>에서도 내몰림을 당한다.
이제 그가 의지할 것은 술을 제외하면 그의 동료 여교수이자 <데스 워치>단원인 콘스탄스(로라 리니 분)
밖에 없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이 천재가 갈 곳은 어디인가.
이 황당한 삶의 굴곡을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길은 <신념을 위해 죽는 것>이었다.
그가 극중에서 술에 잔뜩 취한 채 길거리 인파를 헤쳐가면서 혼잣말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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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신을 믿고 젊은이들을 나쁜 길로 인도했다는 누명을 쓰고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선고 받는다. 하지만 그 시대에도 유명인사는 극형을 면제해 주는 장치가 있었다.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벌금을 제시하고 지불하면, 사형은 면하게 해 주는 제도였다. 소크라테스는 벌금을 제시하라는 재판관에서 겨우 30미나(120파운드, 한화로 5만원
조금 더 되는 액수)를 제시하였다. 플라톤 등이 보증을 섰음에도
불구하고, 법정은 괘씸죄를 더해 사형을 집행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생명을 건질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을 조롱하며 죽음을 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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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손쉽게 이야기하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격언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루어 졌다.
이 영화, <데이비드 게일>의 핵심은
바로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데이비드 게일은 소크라테스와는 달랐다. 자신의 생명 뿐 아니라 타인의 생명까지도 희생함을 조장, 방조해가면서 신념을 관철한다는 점이다. 더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더 적은 수의 생명을 희생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땅속에 묻힌 공리주의의 주검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며, 근본적으로 자살테러와 다르지 않다.
어떤 경우든 인간은 목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그 어떤 고귀한 이념이나 신념을 위한 경우이든, 인간의 생명을 수단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
물론 인간적으로 데이비드 게일은 훌륭하고 순수하다. 세상 사람들 중
많은 수는 그의 아내처럼, 신념을 위해 싸우는 순수한 사람들의 뒤에서 사악하게 이익을 챙긴다.
하지만 순수하다고 해서 인간을 수단으로 다룰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볼 수 있는 블룸(케이트 윈슬렛 분)의
경악스런 표정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바로 그 표정이 주는 느낌이 이 쉽지 않은 주제에 대한 감독의 결론이 아닐까.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