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닥터플라자의 영화칼럼 <시네마 파라디소>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판의 미로’는 결코 범상한 영화가 아니다.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소녀가
만난 판, 그가 알려준 비밀과 지하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과제들이 이루어내는 환상적인 이야기. 삶과 죽음을 넘어선 희생과 구원의 문제를 슬프고도 아름다운 동화 속에 담아낸 ‘판의 미로’는 길예르모 델 토로가 만든 최고의 작품이라 하기에 손색이
없다.> ‘판의 미로’는 현실과 환상이 서로 얽혀 있는 영화이지만 ‘해리 포터’ 류의 판타지물은 아니다. 전형적인 판타지 영화는 환상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나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지만, ‘판의 미로’는
환상을 모두 제거해도 여전히 이야기가 성립 된다. 이 영화에서 판타지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기 보다는, 관객에게 질문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 말하자면 현실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필수이지만, 판타지는 선택이다. 판타지를 얼마나,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가 바로 감독이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인 것이다. 영화는 역사적으로 스페인 내전을, 지리적으로는 정부군과 반란군의 국지전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스페인의 어느 산 속을 배경으로 한다. 전쟁과, 그에 따른 현실에 무력하게 끌려가는 어른들이 ‘현실적인 이야기’의 축을 만든다. 반면
‘환상적인 이야기’는 현실 세계에 내던져진 소녀 오펠리아가
읽는 동화책의 내용으로부터 시작되는 ‘지하 세계의 공주 이야기’이며, 이는 현실의 이야기와 대비되는 또 다른 이야기 축을 구성한다. ‘장르를
따지자면 ‘판의 미로’는 판타지도, 사실주의적 영화도 아닌, 2중 구조를 가지는 독특한 형태이며, 이러한 두 가지 이야기가 조화롭게 이루어내는 내러티브의 견고함이 영화의 가장 괄목할 만한 특징이다. 현실 세계의 이야기 구조는 그 자체로서 고전적인 패러다임을 잘
따르고 있다. 영화 첫 부분의 플래쉬 포워드를 제외하면 연대기적 서사 구조를 유지하며, 이는 관객들이 어려움 없이 이야기를 따라올 수 있게 만든다. 이러한
현실 세계 이야기는 환상 세계의 이야기와 함께 서로 독립적이지만 일치하고, 상대적이지만 조화되어 있다. 예를 들면, 오펠리아가
지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이루어내야 하는 3가지 임무는 비슷한 시점에서 현실 세계에서의 사건들과 맞물려
있다. 오펠리아가 두꺼비를 찾으러 무화과 나무 속으로 들어갈 때, 무화과
나무가 상징하는 숲의 평화로움은 전쟁으로 파괴되며, 이는 나무를 죽인 두꺼비와도 같은 존재로 인식된다. 아이들을 잡아먹는 귀신의 집에서 오펠리아가 먹어버린 금지된 포도는
메르세데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식량 창고를 섣불리 공격하는 반군들의 억제되지 못한 욕망과 일치한다. 마지막
임무 역시 대위가 보여주는 현실 세계에서의 욕망과 지하 세계로 들어가는데 필요한 오펠리아의 희생의 선명한 대비로 이루어져있다. 이렇듯 두 개의 이야기는 언뜻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밀접하게 얽혀있으며, 세밀하게
다듬어진 내러티브 구조를 만들고 있다. 전체적으로 두 가지 이야기는 적절한 동기 부여, 치밀한 복선, 빈틈없는 사건의 체계화에 의해서 튼튼하게 결합되며, 대위법적인 조화를 이룬다. 이러한 요소들이 단선적인 편집에도 불구하고
결말 직전까지 갈등을 효과적으로 상승시켜 관객은 별다른 노력 없이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않게 된다. 이야기를 구현하는 여러 가지 장치들도 튼튼하다. 오펠리아역의 이바나 바쿠에로(Ivana Baquero)는 12살 소녀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분위기 있고 억제된 표정 연기를 잘 보여준다.
‘괴물 전문 역할’로 이미 유명한 덕 죤스(Doug
Jones) 또한 설정하기 쉽지 않은 판과 식인 괴물의 캐릭터를 잘 연기했다. 판의 걸음걸이를
나타내는 진동음이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음향 효과 역시 무난하다. 언급한 바와 같이 전체적인 내러티브 구조에 있어서 ‘판의 미로’는 복잡하지는 않다. 이해가
어려운 부분은 없으며, 단 한번의 관람으로 모든 이야기를 파악할 수 있다. 헐리우드식 해피 엔딩을 무시하고 있지만 이 점이 관람에 무리를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메시지 전달에 있어서라면 이 영화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스페인 내전이 배경이라고 해서 이 영화가 정치적으로 읽혀지기는
힘들다. 물론 정부군의 사령관인 비달 대위는 극우파, 파시즘, 가부장적 가치관의 상징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감독은 좌파인 반군
측에도 정의를 부여하지 않는다. 정부군이 하는 것과 똑같이 확인 사살을 하는 반군, 연인 메르세데스를 스파이로 이용하는 페드로 모두 전혀 인간적이지 않다. 정부군이
아무런 이유 없이 선량한 사람을 죽이듯이 반란군 또한 정부군을 죽이는 것이 유일한 목적일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스페인 내전과 정치 이데올로기는 주제의 중심이 아니라 소재에 불과하다. 현실 세계가 인간에게
가하는 잔인함, 그것에 무력하게 굴복할 수 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왜소함이 바로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더욱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이렇듯 인간은 한계적 존재이며,
자의든 타의든 어쩔 수 없이 다양한 형태의 구원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에 있어서
지하 세계는 죽음과 어둠의 상징이며, 판 역시 믿을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영화에서의 판은 자연을 관장하는 요정으로 소개되지만, 그의 기이한
외모와 태도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오펠리아는 평범한 인간들과는 달리 판을 믿었고,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을 희생시키기까지 한다. 믿음과 희생으로 오펠리아는
지하 세계의 공주로 돌아간 것이기도 하고, 인간으로서 현실의 고통에서 해방된 것이기도 하다. 마지막 순간, 영화는 오펠리아 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판의 이야기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당신은 오펠리아가 지하 세계의 공주라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우리를 둘러싼 관습과 이성을 이용하기
보다는 오펠리아의 고통과 믿음, 그리고 희생을 가슴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제대로 된 판단이 가능할 것이다. 어려워 보이지만, 길예르모 델 토로가 들려주는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를 2시간 정도만 듣는다면 결코 어렵지 만은 않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해답의 실마리는 영화의 맨 끝부분 나레이션에 있다. “공주가 지상에 남긴 흔적들은,
어디를 봐야 하는지 아는 자들에게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