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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아(Melancholia, Lars von Trier, 2011)

조회 수 1170 추천 수 0 2015.01.10 10:11:48

melancholiaposter.jpg



(주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안티 크라이스트>에 이은 라스 폰 트리에의 이 영화는 형식적으로 많은 부분을 전작과 공유하고 있다.

지구로 다가오는 새로 발견된 행성 <멜랑콜리아>는 마치 두 번째 달처럼 두 개의 그림자를 만들고, 지구에 사는 생명체들에게 다양한 영향을 끼친다. 행성이 다가오든, 멀어지든, 밤 새도록 져스틴의 결혼식은 펼쳐지고, 그럼에도 결혼은 이루어지기 힘들다. 멀어질 듯 하던 행성은 궤도를 갑자기 바꾸어서 다시 지구로 다가오며, 사람들은 행성의 이름 그대로, <멜랑콜리아>에 빠진다.

초고속 촬영으로 이루어진 첫 8분 동안의 영상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을 배경으로 영화의 줄거리를 함축하는 부분인데,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로 작용한다. 특별한 반전이 없는, 2시간이 넘는 상영시간 내내 관객은 이 첫머리 부분을 떠올리며 그것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고, 이것은 끝까지 몰입을 유지하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서론>의 기능이다.

첫 부분, 져스틴의 결혼식 이야기는 인간의 관습에 대한 조롱으로 가득하다. 좁은 시골길을 긴 리무진을 타고 안간힘을 다하며 결혼식장으로 가는 신랑 신부의 모습부터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냉소적 시선이 시작된다. 식장에 모인 인간군상들은 결국 모두 자기 자신의 입장만을 고수하며 부딪힌다. 애당초 제도의 속박을 감내할 마음이 없었던 신부는 언니의 성대한 결혼식 준비와는 무관하게 결혼 자체를 거부하고 만다. <멜랑콜리아> 행성은 달처럼 그림자를 만들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혼식 때문인가.


두 번째 부분
, 멀어지는 듯 하던 행성은 다시 지구로 접근한다. 져스틴은 다가오는 행성과 교감하고, 클레어는 아이를 데리고 도망치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가장 지적이고 침착한 모습을 보이던 클레어의 남편 죤은 어이없게 자살해 버리고, 남아 있는 세 명은 나무를 깎아 들판에 <멜랑콜리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인간의 삶이라는, 결코 희망이 있을 수 없는 절대적 우울 앞에서, 이성은 자살하고, 감정은 도망치려 하며, 종교는 헛된 안식처를 제공하려 하는 모습이 참으로 처연하다.


<
안티 크라이스트>의 이성과 종교에 대한 냉소적 시선에 이어서, 사물과 제도에 인간이 부여한 가치들이 도대체 쓸 데 없다는 허무주의를 읽는다. 또 다른 의미에서, 우리는 누구나 자기 자신의 <멜랑콜리아>가 다가오는 상황에 처해 있다. 행성은 지금 너무 멀리서 서서히 다가와서 충돌할 것이라는 절대적 사실을 인식할 수 없을 수도 있고, 제대로 궤도를 틀어서 갑자기 나의 지구로 뛰어들 수도 있다. 우리는 도망도 쳐 보고,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 보려고도 하지만 <멜랑콜리아>와 지구의 충돌은 중력법칙이 존재하듯 이미 결정되어 있으며 결코 피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멜랑콜리아 행성은 가까운 우주의 한 공간을 유유히 떠다니고 있을 것이다
. 다만 그 행성이 아직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음에 감사할 뿐이다. 가슴에 얹은 철사고리가 드디어 행성의 충돌을 예고할 때, 사과나무를 심고 안 심고는 각자가 판단할 수 밖에 없는 문제일 것이다.


<
안티 크라이스트>에 비교하여 복합적이지 못하고, 극적인 재미도 덜 하다. 하지만 정해진 운명 앞에 인간은 얼마나 희망 없는 존재인가를 이렇듯 냉정하게 보여주는 영화는 지금껏 없었다. 라스 폰 트리에의 다음 독설은 어떤 것일지가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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