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1
병을 열자 마자 용수철은 단 듯한 베리 향기가 사방으로 튀어나온다.
느끼려고 애 쓸 필요가 없다. 이미 온 방안에 향기는 가득하다.
색은 벽돌색을 넘어 호박색으로 진행하고 있어서 조금은 상태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입에 한 모금을 담는 순간 그런 걱정들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잘 익은 베리, 딸기 등 신선한 느낌이 잠시 강하게 뿜어낸 후 곧 놀라울 정도로 모습을 바꾼다.
송로버섯, 야생동물, 사향, 향수, 그윽한 시골 헛간, 계피 그리고 흙 내음.
대단히 복합적인 향이지만 이상하게도 그 하나 하나를 구분해 낼 수 있다.
마크레빈슨 앰프에 JBL 에베레스트를 물린 듯 울림은 따뜻하면서도 칼날같이 선명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죽향과 시가, 그리고 살짝 피 맛까지 느껴진다.
한마디로 세월과 어우러진 피노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모습을 전부 보여준다.
입 안을 꽉 채우는 질감과 상큼한 산도가 이루는 외줄타기같은 균형미 역시 이 와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길고 아늑한 피니쉬는 덤이다.
오늘은 그 비싸디 비싼 부르고뉴가 전혀 부럽지 않다.
Marty's (MA)에서 구입, 가격은 소박하게도 70USD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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